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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감상

[책봄] 보이스

by 은아비 2020. 5. 2.
보이스 - 10점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시공사

 



침략으로 글을 잃어버렸던 종족이 평화를 찾는 이야기. 서부 해안에서 높은 문명이 빛을 발하던 안술은 사막의 알드에게 공격을 받고, 글을 악마라 취급당하며 책이 금지된다. 알드와 갈바만드의 혈통의 이은 아이, 알드의 겉모습과 갈바의 정신을 이은 메메르는 문자를 인식하고 사용하기 전부터 글을 허공에 쓰고 비밀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갈바만드의 수장 술터는 자신의 책무를 이을 메메르에게 글을 가르친다.

먼 옛날 추방자들이 서부 해안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던 곳에 그대로 사는 갈바만드 가문은 신탁을 읽고 전한다는 책무를 지니고 살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와전되어 신탁의 집, 즉 갈바만드의 집에 악마가 있다고 하여 알드의 장군 '이도르'는 술터를 잡아다가 고문을 가하고 다리를 저는 불구로 만든 후에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하고 풀어준다. 책 때문에 모진 고문을 겪은 수장은 '책'을 메메르 이외의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고, 신탁에 대해 메메르에게 자세한 것을 알려주지 않지만 메메르는 저절로 알게 된다. 메메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몸을 빌려 말하는 '목소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되지만, 또한 그것이 자신을 술터 갈바만드와 이어주고 자신이 사는 집의 정령과 선조들과 이어주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억눌린 지배 아래 생활하던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대부분 '피의 혁명'이었다. 그들은 폭력과 과격한 시위를 통해 자유를 얻어냈고, 목소리를 냈으며, 힘을 얻었다. 작가는 당연하게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을 '시인'과 '역사', 그리고 '연설'을 통해 서서히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미 한 차례 방화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드러났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분노를 참고 회의를 통해 권력을 이양하며 선거로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까지 이끌어낸다.

카스트로 오렉이 나왔던 '기프트'의 내용은 오래전에 읽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렉은 자신이 받은 '선물'을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고, 그 답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고향을 떠난다.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오렉의 선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능력이라고 기억된다. 오렉은 서부 해안에 와서, 메메르를 만나고 나서 크게 기뻐한다. 사실 안술에 찾아온 계기가 귀중한 '책'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알드가 주둔하고 있는 안술은 책이 금지된 사회였고 당연히 오렉은 책을 보지 못했다. 메메르나 수장도 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렉과 그라이는 안술에 와서 메메르를 만났고, 수장을 만났으며, 안술이 평화를 찾는데 기여한다. 사람들은 오렉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발언권이 큰 오렉은 자신이 어디 있느냐와 무엇을 말하느냐를 신중히 결정하고자 한다. 이는 권력의 속성과 관련된 부분으로, 외부인인 오렉을 통해 안술과 알드의 대치 상태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오렉은 어느 단체에 속한 것도 아니고, 특정 세력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적절한 때 적절한 말을 하기만 한다면 '영웅'으로 칭송받을 역할이었다. 물론 오렉이나 그라이는 그런 지위를 바라지 않았겠지만.

언어=정신이라는 것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선조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강제로 개정하게 되는 것이 어떤 역사인지 알고 있기에, 당연히 분노하고 슬퍼하고 복수를 꿈꾸지만, 또한 어떤 것이 복수인가에 대해 방법론을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침략, 평화, 권력 등 여러 가지 화두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복잡한 책이다. 메메르가 말하는 형식이기에 개인적이기도 하나 다른 사람들이 메메르에게 보여주는 반응으로 개인과 사회가 어떤 다른 방향을 가졌는지도 보여준다.

번역이 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포장마차'라는 단어가 그러했고, 책을 다 읽어가면서도 어색하고 찜찜한 문장 느낌 때문에 개운하지 않다. 원서로 읽어야 하는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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