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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일탈

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by 은아비 2018. 2. 2.



색채의 황홀 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리 로랑생의 작품. 전시회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한 사람의 일생을 표현하기에 공간이 작다고 느껴질만 하지만, 또 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고 생애가 어땠는지 되새겨보기에 부족한 구성도 아니었다.


마리 로랑생은 아버지를 모른채 자랐고,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배웠다. 도자기 제작소에서 시작한 그림은 당대 최고 예술가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의 작업실 '세탁선(Bateau Lavoir)'에 들어가서 인정을 받을 만큼 두각을 나타냈고, 그녀가 남성 주류의 화가들 사이에서 '자신'을 찾기에 부던히 노력했다는 흔적이 그림 곳곳에 보였다. 날고 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그려낸다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유화는 수채화보다는 투명한 느낌이 덜하다. 색을 자꾸 섞을수록 탁한 빛이 돌기도하고, 색은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자 심리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기 때문에 화가들의 색은 쉽게 만들어지는 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기 그녀의 그림들은 어두운 색이 많이 보인다. 피사체를 돋보이게 하려 배경을 어둡게 칠하기도 하고, 그녀가 그리 즐길만한 시대를 보내지 못했던 탓도 있어보인다. 


마리는 세탁선에 있을 때 피카소 파블로의 소개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기욤의 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의 주인공이 마리 로랑생이다.) 이 때 주로 회색과 갈색으로 표현하던 그림에서 초록과 파랑, 핑크를 사용하며 변화한 흔적이 많이 나타난다. 특히 녹색을 많이 사용했고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유행하던 1920년대엔 부인과 아이들, 동물을 그린 것이 눈에 띈다. 마리 로랑생의 그림에서 부드럽고 선명한 색은 그녀가 사랑했던 날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리는 독일인 귀족 남편과 결혼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적국 시민으로 간주되어 모든 재산을 빼앗긴다. 이로 인해 중립국인 스페인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그리던 마리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전쟁으로 망명생활을 하던 마리는 프랑스 예술가들의 청원으로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마리는 프랑스에 돌아온 뒤 초상화 요청을 많이 받는다. 특히 코코 샤넬이 요청한 초상화의 일화는 훗날인 지금에 와서야 더욱 유명해진 듯 하다. 마리에게 초상화를 요청한 코코 샤넬은 완성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수정을 요구한다. 마리는 수정요청을 거부하고 샤넬의 초상화를 창고에 집어넣는다. 샤넬이 수정을 요구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을 유약하게 그린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고 전해진다.(이쁘기만 하던데 뭘...) 코코 샤넬을 그린 그림은 국내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고, 특별히 촬영한 관람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핀 버튼도 코코 샤넬 초상화를 형상화한 것만 더 비쌌다.)


마리는 여러 콜라보레이션으로도 유명했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사랑의 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서린 맨스필드'의 '원유회' 등 도서 일러스트 작업, 발레 '암사슴들'의 무대연출, 자동차 회사 포드의 광고라던지, 샤토 무통 로칠드 1948 빈티지의 라벨지 작업까지. 마리가 그 옛날 조금씩 다른 분야에서 활동을 했다는 것이 금세기 많은 작업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시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의 풍성한 색채를 만든 마리가 60대에 시작해 10년동안 그린 Trois jeunes femmes는 한국 전시에서 촬영이 허용된 작품이었다. 긴 세월을 변화하며 완성된, 조화와 안정감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마리는 말년에 가정부인 수잔을 양녀로 들이며 작품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마리는 시집 '밤의 수첩'을 발간한 시인이기도 했다. 시 'LE CALMANT(진정제)'는 국내에서 '잊혀진 여인'으로 소개됐다.




LE CALMANT

  - Marie Laurencin


Plus qu'ennyée Triste.

 Plus que triste

  Malheureuse.

Plus que malhenrense

 Souffrante.

Plus que souffrante

 Abandonnée.

Plus qu'abandonnée

 Seule au monde.

Plus que seule au monde

 Exilée.

Plus qu'exilee

 Morte.

Plus que morte

 Oubliée.

루하다고 하기 보다 슬퍼요.

 슬프다기 보다

  불행해요.

불행하기 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 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 보다

 나 홀로.

나 홀로라기 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 보다

 죽어 있어요.

죽었다기 보다

 잊혀졌어요.




당시 유럽 화단에 유행하던 입체파와 야수파 속에서도 어떤 화파를 만들지 않고 속하지도 않았던 그녀는, 자신의 그림과 다른 남성화가들의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잘 느끼고 있었을거라고 본다. 표현하는 것에서 남들과 다른 것을 알고 관철시키려 했던 덕에 그녀의 많은 작품을 지금에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